광주에서 가장 유명한 의병장이라고 하면 다들 떠올리는 분이 바로 충장공 김덕령 장군입니다.

광주 충효동 출신으로 임진왜란때 의병에 참여하여, 

장문포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수륙연합작적으로 왜군을 크게 물리쳤으며,

정암전투에서는 곽재우 장군과 연합작전으로 왜군에게 승리했습니다.

이렇듯 임진왜란 때 많은 업적을 남기신 김덕령 장군을 모시는 사당 충장사를 다녀왔습니다.



충장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홍살문을 지나면서 충장사에 진입을 합니다.

참고로 9시부터 18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며

문화해설사도 상주해 있으니 도움을 받아서 관람을 하면 김덕령장군에 대하여 

더욱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수 있습니다.



충장사는 크게 외삼문을 지나면 동재와 서재가 위치해 있고

내삼문을 지나면 우측에는 비각 정면에는 사당이 위치 했습니다.

김덕령장군의 묘소는 사당 뒤편에 위치해 있습니다.



내삼문에 진입하기전 정면에 보이는 유물관입니다.

유물관에는 김덕령 장군의 유폼인 유복(모조품)과 관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내삼문을 지나서 점점 김덕령 장군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 사당내로 진입합니다.

 


김덕령 장군은 임진왜란때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이몽학의 반란에 가담했다는 모략으로

투옥되어 1596년 9월 15일 억울하게 옥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5년뒤 억울함이 밝혀져 관직에 복직되고, 병조판서까지 추증됩니다.



정조12년에는 장군의 충효를 기리고자 사당을 건립하고,

충장공이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장군이 태어난 석저촌을 충효리로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업적을 남기신 우리지역의 자랑스러운 위인 충장공 김덕령장군

단지 충장공을 기리는 사당의 개념도 있지만, 우리지역의 혼을 느낄수 있고,

광주시민들에게는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가을날 소풍겸 충장사 한번 다녀와 보는것도 좋을듯합니다.

지금까지 블로그기자단 이준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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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작가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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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영웅 충장공 김덕령의 혼이 서린 취가정

 

SNS마케팅전문강사 꿀짱이 가을 어느날 찾은 취가정...

취가정은 충장공 김덕령(金德齡)이 출생한 곳으로서

환벽당 남쪽 언덕 위에 있습니다.

김덕령장군은 SNS마케팅전문강사 꿀짱이존경하는

이지역의 영웅이랍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의 혼을 위로하고

그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1890(고종 27)

후손 김만식(金晩植) 등이 세웠다하며

6·25전쟁으로 불탄 것을 1955년 재건하였습니다.

 

 

주변 정자들 가운데 가장 늦게,

야트막한 산 위에 누대처럼 지었는데,

대부분의 정자들이 강변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과 달리

넓게 펼쳐진 논과 밭들을 향하여 세웠습니.

 

 

정자 앞에 서 있는 소나무는 정자의 운치를 한결 더해준다.

정자의 이름은 정철의 제자였던

석주 권필(權糧:15691612)의 꿈에서 비롯하였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김덕령이 꿈에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하고 한맺힌 노래 취시가(醉時歌)를 부르자,

권필이 이에 화답하는 시를 지어 원혼을 달랬다고 합니다.

 

 

가을에 찾은 취가정은 조용히 추수가 끝난 들판을

응시하는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아늑한 정자로서

김덕령장군의 혼백이 들판을 굽어보는듯한 착각에 빠지는

그런 정자.붉은 단풍과 어우러져 보는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고즈녁한 취가정의 여유로운 모습

 

마루에 걸터앉은 저여인은 무슨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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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꿀짱김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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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버들나무 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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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뜨거운 여름 날, 아이들은 마을 앞으로 흐르는 맑은 개천에서 멱을 감았으리라. 물놀이에 지친 아이들은 들판을 가로질러 오며 소꼴을 뜯겼을 것이며, 더러 개구리며 뱀을 잡아 구워먹기도 했을 것이다. 때론 뒷산에 올라 떫은 ‘맹감’을 따먹으며 허기를 달랬을 것이며, 그러고도 긴 여름의 땡볕이 지겨울 무렵이면 마을로 돌아와 그늘 넉넉한 왕버들 밑에서 낮잠 한 숨 자지 않았을까? 더욱이 얼마나 놀기에 좋은 왕버들인가?  마치 아이들 놀이터 전용으로 만든 것인 양, 큰 줄기는 옆으로 누워 개구쟁이들을 유혹하지 않는가?

1958년에 찍었다는 충효동 왕버들 나무아래 풍경은 꼭 그렇다. 꼴 뜯기고 들어오다 매어놓은 소의 모습까지도.

이곳 광주시 북구 충효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그 개구쟁이들뿐 아니라, 1970년대 이전 우리네 어린 시절의 시골은 다 그랬다. 여름이면, ‘아이스께끼’ 장사라도 오지 않는 이상은 무료하고 힘들었다. 놀다 놀다 할 일없으면 저렇게 나무 위에 올라가서까지 놀았으니까. 그냥 올라가서 놀기만 했으면 그나마 얌전한 편. 어떤 녀석은 그 곳에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임시 아지트까지 마련해놓고 자기만의 세상을 구축하기도 했다. 사진 속의 충효동 왕버들 나무를 타고 노는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그래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놀 시간이 없어서 놀지 못한다. 컴퓨터며 TV에 무한한 종류의 장난감까지 놀거리는 널려있지만 학원 다니느라 시간이 없다. 어디 저렇게 나무 위까지 올라가서 놀 생각을 하겠는가. 떨어져 다칠까봐 말리는 어른들도 훨씬 많을 테고. 그나마 시골에는 인구감소로 놀 아이들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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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왕버들은 지금도 건재하다. 요즘 광주 시민들의 휴식처로 꽤 유명해진 충효동 광주호 생태공원 일대의 이정표 역할을 하며 위용을 뽐내고 있다. 400년 수령을 자랑하는 세 그루의 왕버들은 풍성한 그늘 뿐만 아니라 위안과 추억까지 주며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이 왕버들은 충장공 김덕령의 후손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가 16세기 중반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정조가 김덕령 일가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비각 앞에 심어진 것으로 보아 모두 충장공과 관련되는 나무로 보인다. 이 왕버들 주변엔 당초 소나무 한 그루와 매화나무, 왕버들 다섯 그루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버들 세 그루만 남았다.

이제 왕버들나무는 보호를 위해 아이들이 무시로 올라가 놀 수 없게 됐다(광주시 기념물 제6호). 하지만 왕버들나무를 타고 노는 사진이 어른들에겐 어린 시절의 진한 추억을 느낄 수 있게 한다.


- 글. 김옥렬 (전대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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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광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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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rry_ 2009.08.28 1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저 웅장한 나무...400년 덜덜덜...저 나무가 말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우리 400년 역사를 듣고 보고 느낀 산 장본인인데...

    • Favicon of http://politicalpr.tistory.com baezzang 2009.08.28 1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400년 나무가 이야길 한다면 세상에 뒤집힐 일도 많지 않을까 싶어요. 볼꼴 못 볼 꼴을 다 보면서 풍삭을 맞았으니 말이죠. 많은 연애사도 지켜 보았을 듯 하구요 ㅎㅎ

  2. Favicon of http://bumioppa.tistory.com JUYONG PAPA 2009.08.28 12: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저런 나무들은 오랫동안 보존되어 후손에까지 물려줘야될거 같네요.

  3. Favicon of http://kumdochef.tistory.com 검도쉐프 2009.08.28 14: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들이 매달려 놀 수 없는 것은 아쉽지만, 이젠 왕버들영감님도 좀 쉴때가 된 것 같은데요. ^^

  4. Favicon of http://photoditto.tistory.com 감성PD 2009.08.28 16: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요즘 보기 힘든 나무네요!!
    저 기품있고, 웅장한 왕버들 나무!! 잘 보존해야겠죠!!
    400년이나 되었다니
    앞으로도 쭉~~~ 그 자리를 지켜주길!

  5. Favicon of http://w-view.tistory.com 월드뷰 2009.08.28 16: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무가 정말 웅장하네요~~~저기 저 흑백사진 속의 분들은 행복한 분이네요~~
    저 웅장한 나무에도 올라가보시고~~

    • Favicon of http://politicalpr.tistory.com baezzang 2009.08.28 2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한창 클때, 동네 어귀의 나무에서 놀았던 기억이 아련한데...사진을 보니 추억이 새롭네요.
      월드뷰님 잘 계시죠?

  6. Favicon of http://moms.pe.kr 함차가족 2009.08.28 17: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400년이 지난 지금도 꿋꿋이..불평하지 않고 사람들을 대하는군요
    이정표 역할에 위용을 더하였다니..자연을 해치지 않는 예지..
    대단해요~~

  7. Favicon of http://aiesecks.tistory.com adios 2009.08.28 2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시골 마을 앞의 나무도 꽤 오래되었더군요.. 가끔 굿판이 벌어지기도 하더군요 ^^

    • Favicon of http://politicalpr.tistory.com baezzang 2009.08.29 2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상님네들의 자연숭배의식이 전통으로 내려온 고장인가 보네요. 그때는 자연의 위대함을 알았던 때였죠. 지금은 인간의 첨단 과학이 늘 자연에 도전하지만..

  8. Favicon of http://blue2310.tistory.com 드자이너김군 2009.08.28 23: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흐어~ 400백년 ㄷㄷㄷ 나무 정말 위염 있어 보이내요.
    오래된 나무 가끔 봤는데, 이나무는 오래된 나무 답지 않게 풍성하내요.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 평상을 펴고 누워 있으면 참 좋은데 말이죠..^^

    • Favicon of http://politicalpr.tistory.com baezzang 2009.08.29 21: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군님, 오랜만입니다.
      김군님도 나무타며 놀았던 기억이 있으신 듯 하네요.
      흑백과 칼라의 대조 이것이 바로 세월의 흔적이겠지요.

  9. Favicon of http://plusone.tistory.com pLusOne 2009.08.29 0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무 수령이 엄청나군요!!

  10. Favicon of http://www.soondesign.co.kr 이정일 2009.08.29 0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버들이 있으면 저라도 펄쩍 뛰어 올라가고 싶겠어요.

  11. Favicon of http://nagnegil.net 조르바. 2009.08.29 05: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흑백사진 속의 4분이 정말 부럽네요. 매어있는 소도 더불어서요. ^^
    왕버들 나무가 천년만년 건재하길 바랍니다. ㅎㅎ

  12. Favicon of http://ququ.kr 쿠쿠양 2009.08.29 17: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400년의 역사라..;; 어찌보면 인간이 한심해 보일수도 있겠어요..
    굽어보는 나무에게는...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인 역사를 지니고 있으니;

  13. Favicon of http://lifeisgood.tistory.com GoodLife 2009.08.29 18: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하네요...아직도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주는 명소인듯 합니다.

  14. Favicon of http://happy-box.tistory.com/ 행복박스 2009.08.30 1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위에서 보는 나무들과 다른 뭔가 특별함이 있는 것 같아요

  15. Favicon of http://raonyss.tistory.com 라오니스 2009.08.30 15: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왕버들나무의 포스가 대단합니다...
    나무가 아프지 말고.. 오랫동안 광주시민과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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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하면 무심코 연상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무등산이다.
아마 이 지역 사람이 아니더라도 광주와 무등산은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되는 단어 일 것이다.  호남정맥의 중간쯤에 우뚝 솟은 무등산 (1187m)은 그 치맛자락의 절반은 광주시에 뻗어있고  나머지 절반은 담양과 화순을 아우른다.

영산강의 원천을 내는 무등산에 오르는 길은 세 갈레 등산로가 있다. 그 중 일반인에게 잘 아려진 길은 아래 1.2.처럼 중심사와 산장을 시작으로 하여 다시 산장과 중심사에 이르는 길이다.

1. 증심사 버스종점 =1.2=> 증심사 =0.5=> 송풍정 =1.5=> 중머리재 =1.3=> 장불재 =0.4=> 입석대 =0.5=> 서석대 =0.5=> 입석대 =0.4=> 장불재 =1.6=> 규봉암 =3.0=> 꼬막재 =2.6=> 산장버스종점  (총 13.5 Km)

2. 산장 버스종점 =2.6=> 꼬막재 =3.0=> 규봉암 =1.6=> 장불재 =0.4=> 입석대 =0.5=> 서석대 =0.5=> 입석대 =0.4=> 장불재 =1.3=> 중머리재 =1.2=> 새인봉삼거리 =0.5=> 새인봉 =0.3=> 선두암 =2.3=> 운소봉 =0.5=> 증심사버스종점 (총 15.1 Km)

그리고 또 하나 숨겨진 등정로가 있는데 화순군 이서면 야사에서 시작하여 폭포의 길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다는 시무지기 폭포를 거쳐 꼬막재에 이르는 길이 그 것이다. 


 야화 1. 김삿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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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동에서 무등산장에 이르는 중간에  청풍저수지를 끼고 삼거리가 있다. 이곳 청품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둘러보면 청풍 저수지를 내려다보며 곱게 단장한 분묘를 찾을 수 있다. 그 주인은 이곳 무등산에서 덧없는 인생을 유랑으로 마감한 김삿갓(본명 김병연)이다. 일설에 의하면 후일에 둘째 아들 익균이 그의 유해를 강원도 영월의 태백산 기슭에 옮겨 묻었다고 한다.

이 김삿갓이 분묘가 이곳 무등산에 안치된 이유는 그가 무등산 자락의 한끝인 화순 이서면 적벽에서 객사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무등산이란 이름을 명명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김병연은 아름답다고 이름난 삼철리 강산을 안가본 곳이 없는 유랑객이다. 방랑여정에서 수없는 풍파를 경험한 그가 인생 만년에 무등산에 이르게 되었다. 무등산은 형세가 멀리서 보아 우뚝 솟은 것이 단조로워 보인다. 그러나 막상 산세에 들어서면 심산유곡이 있고 외견의 모습과 달리 아름다운 자태가 곳곳에 숨겨 있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다.

그래서 김병연은 자신의 인생을 표현하고 보듬은 무등산을 깊이 사랑하고 안위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 산을 인생과 비견하여 무등산이라 이름 했다고 한다. 그 의미는 없을 무(無) 등급 등(等)자를 써서 인생의 깊이를 내포한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심오한 산이라는 뜻 이다.

덤으로 김삿갓의 시한 편 읖조리면 인생의 맛이 더 깊어 질것 같다.

* 시시비비

是是非非詩
年年年去無窮去 日日日來不盡來
年去月來來又去 天時人事此中催
是是非非非是是 是非非是非非是
是非非是是非非 是是非非是是非

이 해 저 해 해가 가고 끝없이 가네.
이 날 저 날 날은 오고 끝없이 오네.
해가 가고 날이 와서 왔다가는 또 가니
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이 가운데 이뤄지네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진 않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일세


야화 2. 의병장 김덕령

시 흥에 취해 김병연의 유적지에서 조금 더 오르면 충장공 김덕령의 사적지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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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 김덕령은 장군중의 장군이요 용장중의 용장이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절명한 장군의 일화 하나을 소개하고 싶다. 

장군에게는 애마가 한필 있었다.
하루에 천리는 달리는 준마였다. 장군은 그 용력이 뛰어나서 활을 당기면 화살이 십리를 날아갔다.

그는 가끔 활시위를 당기고 애마를 타고 화살을 내달아 화살 낙점에 이르는 훈련을 하곤 했다.
하루는 활시위를 당기고 애마를 타고 달렸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화살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애마가 게으름을 피웠다 해서 목을 쳐  죽여 버렸다.
그런데 애마를 죽인 한참 후에야  화살이 날아와 떨어 진 것이다.
이에 자신의 급한 성정이 애마를 죽인 줄 알고 후히 장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선열의 얼을 마음에 담고 산장에 이르면 김삿갓을 홀리던 전경이 펼쳐지는데 여기서부터 산장 등산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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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광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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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삿갓 2008.09.08 1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등산은 역시 광주의 보물~! 올해는 꼭 한번 찾아 가야 겠어요~

  2. 박효수 2008.09.08 1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장에 있는 닭 백숙과, 닭 볶음탕은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추천~!
    닭을 먹고 바로 옆에 있는 계곡에 발을 담구면
    머리끝 까지 시원해 지더라구요~

  3. 이찬이 2008.09.08 1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등산의 무등이 그런 뜻이 있었군요~

    광주 무등산이 아름다운산이라는게 조금더 알려지면
    전국에서 찾아 오겠죠~?

  4. 윤기숙 2008.09.08 1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시 한편 읽었습니다. 노래에서 국어책에서 방랑시인 김삿갓을 많이 듣고 보았는데 실상 김삿갓의 시는 많이 보이지는 않드라고요.

    무등산하면 저는 보리밥이 제일 먼저 생각납니다.
    친구들과 무등산이나 가볼까 하고 가서 중머리재까지만 올라갔다가 빨리 내려와서
    보리밥집을 항상 들립니다.

    사실 보리밥 먹으로 무등산에 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5. 명랑늑대 2008.09.08 14: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無等山에 그런 심오한 뜻이 있었군요.
    대학시절~~줄기차게 오르내렸지만,
    서석대 입석대를 가보지 못하고
    중봉만 오르내렸는데...
    언젠가 꼭 가보고 싶네요.
    무등에 오르면 광주시내가 그리 평온해 보일수 없어요.
    특히 무등에서의 야경은 기가 막히지요.
    갑자기 한 번 오르고 싶네요. ㅋㅋ
    좋은 글 감사 ^^

  6. Favicon of http://kongsimom.idtail.com/ http://kongsimom.idtail.com/ 2008.09.08 22: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등산 하면~ 흐드러지게 펼쳐져있는 억새와 겨울의 하얀 설경이 그려졌는데 이런 애절한 내용이 담겨져있었네요.

    아이들과 산을 오를때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을것 같습니다.

  7. 제프리 2010.06.14 14: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덕령...정말이지 숱한 설화와 전설을 남긴 분이죠^^

  8. Favicon of http://www.spelletje.nl/mario.html mario spelletjes 2011.05.15 1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윤기숙 [2008/09/08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시 한편 읽었습니다. 노래에서 국어책에서 방랑시인 김삿갓을 많이 듣고 보았는데 실상 김삿갓의 시는 많이 보이지는 않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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