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 시골풍경을 담다.


오랫만에 시골에 다녀왔습니다. 시골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많아요.

전남 화순에 이모저모를 사진으로 담아보았습니다.


옛날 시골에는 겨울이 되면 이것이 방안에 꼭 있었지요. 잘 익은 메주 구경하세요.


잘 익은 밤과 토란으로 허기진 뱃속을 달랬습니다.


감나무가 앙상한 가지만 남겼습니다. 내년에는 감이 주렁주렁 열리겠지요.


시골 기찻길에 있는 역과 신호등 입니다.




시골에는 당산나무가 하나씩 있잖아요. 울 동네에도 오래된 당산나무가 있어요.

새가 둥지를 틀었네요. 너무 높지 않을까요?


장독대라고 하지요. 장독대 안에는 간장이 가득하답니다.


시골집 근처 폐가에 번호가 붙었어요. 그것도 대문에 빨간글씨로 하나둘 폐가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하는것 같아요. 시골에 많은 사람들이 귀촌하여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채소들이 가득합니다. 무우, 배추 등등...


몸과 마음이 허전하고 힐링이 필요할때 시골에 한번쯤 가보시는것은 어떨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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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광주랑 블로그 기자단 나현철입니다.

광주시립미술관(관장 황영성)은 2013 중진작가 초대전인 “조각가 문옥자의 초상”전을 10월4일부터 11월10일까지 상록전시관에서 개최 하였습니다.

 점례의 초상-애완녀,  31×18×39cm, Clay                   점례의 초상-상실, 22×19×55cm, Colored Plaster,    점례의 초상-휴식, 80×13×43cm, Granite


일부이미지, 글 제공 : 상록전시관

현재 호남대 교수로 재직 중인 문옥자 작가는 3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광주지역의 조각계 후진 양성, 지역 공공기관의 모뉴먼트 제작 등 지역 조각계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대형 조각가이다. 이번 전시에는 문옥자 교수의 작품세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전업 작가로서의 미래를 기약하기 위해 작품이 준비되었다. 

첫째는, “기다림”의 작품들로서 문 교수의 전반기 작품세계의 주제들이다. 이 작품들은 대리석, 브론즈, 화강암, 테라코타 등으로 다양하게 제작되었고, ‘평화’, ‘화합’, ‘결실’, ‘그리움’, ‘기다림’, ‘설레임’, ‘생각’, ‘만남’, ‘이브’, ‘결실’, ‘언약’, ‘가족’, ‘모자(母子)’ 등의 제목을 가졌다. 류석우 미술시대 편집주간은 “이 기다림은 한 여인으로서의 기다림일 수도 있고 더 큰 인간의 구원과 꿈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둘째는, 2000년대 이후 제작하기 시작한 “점례의 초상” 시리즈와 “젊은 오빠의 초상” 시리즈이다. 전반기의 작품들이 교과서적이고 제도적인 형식과 내용이었다면, 200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파격적인 소재와 주제를 가진다. 문옥자 교수는 점례 시리즈에 대해 “순수했던 시골 처녀의 변모된 모습을 통해 순수에 대한 인간 내면의 원초적 향수를 일깨우고 싶다”고 제작 동기를 밝혔다. 이 시리즈의 연관작인 ‘젊은 오빠의 초상’ 시리즈는 고귀해야 할 성(性)의 타락에 대한 비판과 풍자로 이어지고 있다. 

셋째는, 문옥자 교수의 작가인생을 정리하고 새로운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꿈꾸는 대형 설치작품들이다. ‘인연의 틀’이라는 설치작품은 문 교수의 작품 활동과 인생의 기반이었던 가족에게 바치는 오마쥬와 같은 작품이다. 실제로 문 교수의 부모님이 살았던 집의 문짝과 가족사진을 이용하여 문 교수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어, 작가의 내면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삶-부활을 꿈꾸며’라는 작품은 교수로서의 삶을 끝내고 새로운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시작하는 본인에게 바치는 오마쥬와 같은 작품이다. 인체를 관통하는 나무를 통해 죽음을 넘어 새로운 생명이 돋아남을 표현하였다.

 


한편, 문옥자 교수가 공공기관에서 설치한 대형 모뉴먼트 작품들은 영상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윤진섭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은 “문옥자의 조각에 일관되게 흐르는 정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비롯해서 가족, 생명, 기다림, 삶과 죽음, 희망, 에로티시즘(性愛) 등”으로 분류하고 “거기에는 공통적으로 서정적인 율조가 짙게 깔려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문옥자 교수는 이번 전시를 맞아 “정년퇴임은 신진작가로서의 새로운 시작이며 그간의 무거운 짐들을 모두 내려놓고 온갖 형식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과 자유로운 작품으로 소박한 바람을 계속 꿈꾸고 싶다”고 전시의 변을 밝혔다.

한편 문옥자 교수는 상록전시관에 100여점정도 들여놀 공간인데 142점의 작품을 만들어 식지않는 열정을 내비쳤고, 또 제자들이 전시설치 부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참 사진은 스마트폰과 어플을 이용해서 찍은겁니다.
작년부터 사진을 스마트폰과 카메라로 번갈아서 찍는데 요즘 카메라가 고장나서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찍고 있습니다.

마침 이날 개막식이 있었습니다.
많은 귀빈분들과 제자들이 참석하여 전시회를 축하하셨습니다.

개막식에는 황영성 광주시립미술관 관장님을 비롯해서 하정웅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 하철용 문화예총 이사님, 전 아시아문화도시추진단 현 도시재생연구원 이병훈 원장님,광주여성재단 이윤자 대표이사, 호남대 박기인 재단법인 이사님, 송진희 교수님 등 호남대, 조선대등  많은 교수님들과 제자분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개막식이 끝나고 기념사진

광주상록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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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2-613-7100

광주시립미술관,상록전시관,금남로 분관의 홈페이지는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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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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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온몸으로 난다, 2010>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 
이철수 목판화 32년 
<아이들 뒤따라 올 텐데>전 개최
- 이철수 목판화 32년을 결산하는 전시 - 

 

 광주시립미술관(관장 황영성)은 이철수 목판화 32년을 결산하는 <아이들 뒤따라 올 텐데>전을 2013년 4월 5일부터 5월 5일까지 상록전시관에서 개최한다.

 

 이철수 작가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목판화가로 1981년 첫 개인전을 통해 세상에 그 모습을 보였다. 이번 전시에는 이철수 목판화 32년 동안 만들어진 대표작품들이 전시되며, 이철수의 목판화 인생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시이다.

 

이번 전시에는 이철수 작가의 초기작품인 1981년의 투쟁적 민중미술의  목판화부터 최근에 일상에서의 평화와 존재를 나누고자 하는 선(禪)적인 목판화까지 총128점의 목판화가 전시된다.

 

이철수 작가는 1980년대 초 독학으로 판화를 했고, 1981년 관훈갤러리에서 저항미술의 관점에서 목판화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 한 번의 전시회로 미술대학도 안 나온 이철수는 단번에 1980년대 민중미술의 중심에 서게 된다. 당시 저항적 목판화의 대가 오 윤의 영향이 크긴 했지만, 이철수는 이미 출발부터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었다. 1980년대 이철수의 걸개그림은 운동권의 상징이었고, 민중운동의 도구였다.

 

1980년대 내내 판화를 통한 현실 변혁운동에 열심이던 그는 1988년 무렵 자기 성찰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관심으로 판화영역을 확대해가기 시작한다. 1980년대가 그의 작품 1기였다면, 충북 제천에서 농부와 작가로서의 삶을 겸한 1990년대는 2기에 해당한다.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이 시기 그의 작품을 “민중, 일상, 선화(禪畵)”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설명한다.

 

<밥이 하늘입니다.1987>



<새벽이온다 북을 쳐라 ,1988>


<무게, 1990>


이 시기 그는 민중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평범한 삶과 일상사를 관조하면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찾아내거나, 다채로운 자연을 소재로 삼으면서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인간의 면목을 다양한 관점에서 제시하기 시작한다.

 

3기에 해당하는 2000년대는 선(禪)과 자연과 일상이 어우러진 대중과의 만남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2002년부터 그가 매일 일기처럼 목판에 새겨 이메일로 발송하는 나뭇잎편지는 시골에 사는 그가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이다. 그가 이 나뭇잎편지를 모아 발간한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가만가만 사랑해야지 이 작은 것들』,『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오늘도 그립습니다』들은 그의 판화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으로 그만큼 목판화를 대중의 품으로 안겨준 목판화가는 없었다.

 

<길, 2000>


2011년에는 그의 화업 30주년을 기념한 전시『새는 온몸으로 난다』(관훈갤러리)가 열렸다. 전시제목은 1981년 초기의 뜨거운 민중미술부터 2011년 30주년을 기념한 전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문장이었다. 남과 북이 대치하는 한반도,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는 한국사회에 던지는 이철수만의 메시지였다.

 

이번 광주 전시의 제목은 “아이들 뒤따라 올 텐데”이다. 어지러운 정치와 사회에 대해 그가 느끼는 마음을 작품으로 은유하는 전시회이다. 민중미술의 대선배이고, 지금은 보다 넓은 민중미술을 보여주고 있는 이철수가 민주인권평화의 도시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여는 첫 번째 전시회이다.


이번 전시에 이철수 작가는 4월20일(토)과 4월27일(토) 오후 2시에 작가와의 대화를 두 차례에 걸쳐 상록전시관에서 개최한다.

 

전시개막식은 4월 10일(수) 오후 4시에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에서 개최된다.


※작가님들의 저작권을 존중하며 상업적으로는 이용하지 않습니다.

개막행사에는 시간 나는대로 참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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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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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대나무골

 
설 명절에 고향을 찾아서

  주말 오후(1,29) 설 명절 때 찾아뵙지 못한 사정으로 미리 고향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설 명절이 며칠 후면 다가와 민족의 대이동으로 시작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올 설 명절에 고향을 찾는 정겨움을 저버리게 한 구제역파동으로 고향을 찾지 못 하게 된 신 묘년의 설 명절이 되고 있습니다. 아직은 구제역의 천정지역으로 되어있는 우리지역을 보존하기 위해 고향을 찾지 못하는 객지에서 나가 있는 가족들 얼마나 서운하겠습니까. 사랑한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지 못함을 안타까운 일입니다. 고향을 지키기 위해 고향방문마저 미룬 정성으로 우리고장은 구제역의 청정지역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아주 옛날에는 없던 세시(歲時)풍속으로 도시에 나가있던 가족들이 고향을 찾아가는 정감이 있는 명절을 쇠기 위해 민족의 대이동으로 고향을 찾는 일은 이제는 연중행사 되고 있습니다. 설 명절은 정 월초하루 날이지만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지는 것이 농촌의 세시 풍속이지요. 올해의 설 명절은 긴 연휴가 겹쳐 삼천만 명이 넘은 인구가 이동을 한다고 한다. 고향산천이 그립고 부모, 형제 혈육 간에 정을 나눌 수 있는 설렘에 길이 막혀 오랜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면서도 고향을 찾은 즐거움은 변하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 라 하겠습니다.

   필자의 고향 찾아가 명절 쇠는 것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하고 있습니다. 결혼 후 출가해 2세 낳아 살면서도 명절만은 꼭 고향을 찾아서 부모님께 문안드렸으나 지금은 그 자리엔 타계하시고 계시지 않은 부모님입니다. 객지에 나간 자식들 오면 주겠다고 강정, 깨다식 ,식혜며 수정과 등 한과 만들어 명절 보내고 떠날 때 한 보따리 씩 싸서 주시던 어머니 이었지요. 오매불망(寤寐不忘)자식사랑에 대한 어머니의 모정이었습니다. 식량이 부족해 초근목피(草根木皮)까지 채취해 먹어가며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자식들 기르고 가르치며 사셨던 전형적인 시골의 생활이 이었습니다.

   당신이 생전에 가족을 위해 손발이 부릅뜨도록 애써 평생 동안 농사짓든 그 곳 양지바른 밭 가장자리에 영면(永眠)해 계십니다. 어머니! 올겨울 같이 추운 날 얼마나 추우신가요? 설 쇠고 나면 이제 또 춘 삼월인데 늘 하시던 봄 씨앗 뿌려 농사짓고 싶어 어떻게 계십니까? 유난히도 부지런하신 어머님께 마음속으로 여쭤보았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너희들 여기는 뭘 하러 왔냐? 라고 금방이라도 생전의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초야에 묻혀서 계시지만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이기에 어머니품속의 포근함을 가집니다.

   이렇게 당신이 생전에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시든 자식들이 찾아와 잔 올리고 세배 드린다고 알고 계실까요?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지 못 한 것이 후회스럽지만 소용이 없는 일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생을 마감하는 일도 삶의 부분일 뿐 영원하지 안타는 것입니다. 조상님의 대를 이어 부모님도 타계하시어 가시면서 달리기 하는 육상 트랙에서 바통을 받아 이어지는 것처럼 먼저가고 늦게 갈 뿐입니다. 이것이 인생살이인가 합니다.

   있을 때 잘하란 말을 쉽게 하지만 쉽게 하지 못하고 지내버린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세월이 지나면 잊고 사는 것이 삶이라지만 태어나 죽을 때 까지 잊을 수 없는 인연이 바로 천륜이 맺어준 인연일 것입니다. 명절에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정겨운 정이 묻어나오고 새록새록 실타래처럼 풀려나오는 옛 고향 꿈속으로 돌아가 색동 옷 설빔 곱게 차려입고 동네 어르신들에게 세배 드리고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팽이치기 모두 즐기시고 안전한 귀성과 귀향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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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광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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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saygj.com 빛이드는창 2011.01.31 1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말씀감사드립니다.^^
    최찬규님도 즐겁고 행복한 설날되시길 바랍니다.

  2. Favicon of http://moms.pe.kr 함차가족 2011.01.31 1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설은 뒷휴일이 있어...아내가 많이 즐거워하네요
    처가에 내려가 오랜만에 푹 쉬다가 오려구요.

    • 최찬규 2011.01.31 1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좋아하시겠습니다. 다행이 날씨가 풀린다니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빛이드는창 2011.02.01 08: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주부들은 대부분 뒷휴일이 많으면 좋아하시죠^^
      막 결혼하신 새댁들은 명절증후군에 많이 힘들수도 있는데 세월이 지나면 면역이 생긴다고 할까요? 오히려 지금은 명절때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게 되어 참 좋은 것 같아요^^

  3. Favicon of http://zenkahn.tistory.com 석주제 2011.01.31 14: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 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4. Favicon of http://bookple.com adios 2011.01.31 19: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귀향길 그리고 기분좋은 연휴 되세요 ^^

    • 빛이드는창 2011.02.01 08: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디어 5일간의 명절전날이네요^^ adios님도
      즐겁고 행복한 연휴 잘 보내세요^^

  5. MODEL 2011.02.01 20: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두가 즐거운 설날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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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오피스크립아트

  까치설날은 동요에 나오는 어린이의 말로 설날의 전날을 말한다. 곧 섣달 그믐날을 이르는 말이다. 설날은 우리나라 명절인 음력 정월 초하룻날이다 세수(歲首) 원단(元旦) 원일(元日)라고도 한다. 가는 세월을 막을 수도 없듯이 오는 세월도 막을 수 없어 세상에서 제일 공평한 것이 세월이다. 공전하는 세월의 흐름에 살고 있는 생명체뿐만 아리라 무생물에 이르기 까지 변화하는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세월입니다. 설날이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유년 시절에 보냈던 설날에 이야기 가 생각이 납니다.

  유년 시절 그땐 웬 눈이 그렇게도 많이 내리고 춥기도 했을까요? 자고 일어나면 흰 눈이 쌓이고 동네 앞 넓은 냇물은 꽁꽁 얼어 썰매타기 좋았고 모든 게 크게 보이고 많게만 보였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설날이 다가오는 설 대목에 5일 장을 보기위해서 20리길을 걸어 불편 없이 다녔습니다. 설날 입고 신기 위해 벽장 속에 장날 사다 넣어둔 새 옷과 신발이 그렇게도 빨리 입어보고 싶어 아무도 없을 때 살짝 꺼내어 몇 번이나 신어보고 입어보았던 생각이 아련합니다.

  설날이 빨리 오기를 손곱아 기다리며 설렘으로 잠 못 이루었던 유년시설이 그립습니다. 시골에서는 까치설날인 그믐날이 제일 바쁘지요. 아버지는 차례 상에 올릴 닭 잡아 볏짚 태워 잔털 제거하시고 나는 심부름으로 동네에서 명절 때 잡은 돼지고기에 꿰뚫어 만들어진 구멍으로 볏짚을 넣어 묶어준 돼지고기를 한 두 근 사서 들고 왔었다. 설 차례 상 준비하는 마당에 모닥불 피워놓고 가마솥 뚜껑 거꾸로 뒤 엎어 기름칠해 전부치고 방앗간에는 가래떡 만들기 위해 줄서서 순번을 기다렸지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이 정미기계에서 술술 빠져나오는 떡가래를 맑은 물에 식혀 잘라 담던 어머니의 손길이 바빴습니다.  

  군침 흐리며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던 나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 하 나 뚝 잘라 주시던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었습니다. 지금은 타계하시고 그 자리에는 안 계시지만 그런 어머니의 애틋한 자식 사랑에 손길이 있었기며 명절 때만 되면 고향의 흙냄새와 향수가 그리워지는 시기입니다. 설날아침엔 설 빔 곱게 차려입고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께 세배 드리고 덕담을 해주시면서 세뱃돈 두 손에 꼭 쥐어 주셨지요. 그래서 우리민족은 고유 명절인 설날이 되면 멀리 타향에서 사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가족 간 혈육의 정을 나누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명절 풍속도도 세월 따라 변하고 있습니다. 명절이 되면 고향을 찾는 것이 아니라 교통대란을 피해 역귀성하여 차례를 지내고 아니면 외국여행과 스키장으로 떠나 명절연휴를 보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는 이렇게 세월의 흐름에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교체되는 자연의 현상에 순응하고 사는 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족은 갈 수로 핵가족화 되면서 가족 간에도 개인주의화 되어 명절마저 의미 없는 날이 된다면 얼마나 안타가운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수레바퀴가 굴러가고 오듯이 올해도 어김없이 이렇게 또다시 경인년을 보내고 신 묘년의 설날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젊은 시기를 보내버린 시점의 세대로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왜 그리 그 말이 내 마음은 쉽게 받아드리지 못 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런 소리를 들을 적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 곤 하지요 소싯적 까치설날을 설렘으로 기다리든 때가 엊그제 같더니 이제는 설렘이라기보다는 세월의 흐름도 유유히 흐르는 강물위에 편안히 떠가는 돛단배처럼 매사에 편안한 마음으로 설 명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명절을 보내고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보통사람의 소망이며  작은 행복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까치설날과 설 명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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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광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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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ODEL 2011.02.01 20: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덧 내일부터가 설날 연휴의 시작이군요 ^^ 즐거운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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