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엔 장성과 광주의 경계지점 숲속 마을에 고즈넉히 자리한 월봉서원의 빙월당 대청마루에 걸터 앉아 오랜 전통의 멋을 느끼며 혼자만의 우리 문화재 돌아보기를 했었지요.  월봉서원이 고풍스러운 풍광은 다음번에 자세히 포스팅 하기로 합니다.   오늘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위풍당당한 또랑의 집게주먹대장 가재와의 즐겁고 재미난 데이트 이야기 랍니다.  월봉서원의 그리 높지않은 옛기와 담장 너머로 백우산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계곡이 있더군요.  


호기심에 슬리퍼를 신고 첨벙 첨벙 소년시절을 회상하며 아이처럼 혼자서 걸어 다녔답니다. 문득  작은 돌들을 조심히 집어 올리며 어린시절 친구들과 가재를 잡던 추억이 떠오르더군요.  가재는 낮 동안에는 넓직한 돌 밑바닥에 기어들어가 햇빛을 피하다가 밤이 되면 기어 나와 활동을 하는 야행성 절지동물 입니다.  와~ 역시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어요~^^  있어요!   이제 막 모양을 갖춰가는 물렁물렁한 가재부터 앙증맞은 꼬맹이 가재, 눈매와 집게주먹의 자태가 천하무적 위풍당당한 큰 가재까지 중년의 12살 소년?? 의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정말이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두시간을 요눔들과 무아지경으로 데이트를 했던것 같습니다.  




잔뜩 경계하고 있는 가재를 잡을 때는 사진과 같이 등 뒤쪽에서 집어 올려야 무시무시한?? 집게주먹에 찝히지 않는답니다.  요녀석... 집게발을 사정없이 휘두르며 몸부림치는 중 입니다.  아따~ 짜식 친해지려 하는 딸기농부 마음을 모르나 봅니다.~^^ 아직은 애송이 여서 물려도 그리 아프진 않을 듯 하네요~^^



위의 사진은 이날 잡았던 가재중에 제일 큰 녀석입니다.  

몸을 일자로 쭉~~ 뻗는 것은 바로 물속에서 도망칠 때 하는 자세랍니다. 

이 정도 크기이면 모닥불에 오글오글 구우면 붉으스럼하게 익어가는 냄새가 아주 좋거든요. 

어린시절 가재는 모두들 드셔 보셨지요?







요눔은 중하 크기정도의 가재녀석 입니다.  제발 놔주라고 몸부림치며 귀여운 집게주먹발로 위협??하는 모습이 참 귀엽습니다.


흐르는 돌틈 사이사이마다 다슬기들이 붙어 있어 정말이지 한개 한개 떼어 모아 다슬기 국을 끓여 먹고 싶어지더군요.  자연사랑?  그래요. 딸기농부도 자연을 끔직이 사랑합니다.  당연 제 먹을만큼 아주 소량을 잡아 오고 싶다는 얘기이지요~~^^






중간크기 외집게발 가재와 꼬맹이 가재를 잡아 두 녀석을 모아 놓았더니.... 뭔가 즈그들끼리 작전을 짜는 듯 하더니...이내 두 녀석이 동시에 저를 바라보면서 "아저씨~ 우리 어떡할   꺼구먼유?  드실껴? 놔줄껴?~"  아따 정말 요 두놈들 확~ 해 불까요!  ㅎㅎ 임마~ 애들은 가라 가~!  짜식들 딸기농부 어떻게 보는겨 시방... 엄마 젖좀 더 먹고와!   그랬더니 즈그들끼리 요렇고롬 싸움질 합니다.   "아따~~헝아야~ 내가 아니고  저기 저 덩치 큰 딸기아저씨랑께~~"




요눔도 아주 작은 가재인데... 한 성질 하죠?~ㅎㅎ  

놔줘유~~ 제 친구들이 물고기 잡으러 가자고 지금 동구밖에서 기다린단께요~~ㅋㅋ







이 녀석은 정말이지 위풍당당한 멋진 가재 녀석 입니다.  물속에서 끄집어 내어 바위 위에 올려 놓았더니  제대로 위협적인 자세를 잡습니다.  딸기농부 보기엔 짜식~ 정말 멋지군요.  "딸기아저씨~ 저 이래뵈도 무적무패의 골목대장 가재랑께요.  한판 뜰까요~?  "
















멋진 수염을 휘날리며 폭포수를 배경으로 마치 일전을 앞둔 전사처럼 위풍당당 합니다. 감히 누가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하고 무시무시한 집게주먹을 가진 이녀석에게 덤빌수 있을까요~!  가재 주먹대장 정말 멋지죠?


바위 밑으로 기어들어가 자세를 낮추고 쥐 죽은듯이 숨으려 하는 가재 주먹대장! 어릴적 멋모르고 손가락 집어 넣다가  집게발에 물렸던 기억들 있으시지요? ㅎㅎ  추억은 이처럼 사람 마음을 차분하게 정화시키는 힘이 있는 듯 합니다. 물론 행복한 추억에서 말이죠. 그러니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가족, 친구, 이웃들과 사이좋게 아름다운 추억들을 만들어 가는게 진짜 행복이랍니다.


덩치는 커보여도 아직은 애송이로 껍질이 물렁물렁한 가재 입니다. 

요 녀석은 집어 올릴 때 아주 조심스럽게 만져야 됩니다.  

잘못하면 ....알죠?


이날 만났던 최고의 덩치, 가재의 최고봉 우두머리? 어쨋든 묵직한 녀석 입니다. 









이 덩치 큰 녀석의 집게발에 걸리면... 아야~! 하는 비명소리가 절로 나오겠는데요. 

 가재들의 최고의 무기는 역시 집게발의 위력 입니다. 




위 사진 세 장은 위풍당당한 집게주먹 가재의 베스트 포토 입니다.  거무튀튀한 껍질의 색깔과 예리하고 묵직한 집게발의 붉은 색감이 강렬하게 다가왔던 멋진 녀석이지요.  월봉서원 옆의 건강하고 맑은 또랑에서 만난 가재 친구들과의 행복한 추억 데이트 이야기 였습니다.  가을이 막 접어드는 9월이면 다시 이 녀석들을 만나러 와야겠습니다. 어릴때는 군것질거리들이 풍부하지 않을 때여서 아이들에게 가재는  좋은 먹거리 였지만....~ 자연은 자연 그대로가 가장 자연스럽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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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이 딸기농부 2006년 조대병원 간이식후 7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매월 정기진료의 날이었습니다.  진료받고 나오는 길에 우연하게 도로표지판 옆으로 "광주동오층석탑 400미터" 라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망설임없이 방향을 틀어 가보았답니다.  스마트폰으로 몇장 담으면서 왠지 송구하다는 생각이 스치더군요. 국가지정문화재로 보물 제110호로 지정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문화재를 앞에 두고 말이다. 


 사진만 담아두고 이틀여가 지난 수요일 우연히 광주 임곡동이 노지수박 농가를 탐방을 갔다가 임곡동 안쪽 도로변의 "신룡동 오층석탑" 표지판에 마음이 쏠렸다.  광주 동구 지산동에 위치한 "광주동오층석탑" 과 과연 무엇이 다른지 사뭇 궁금해지더군요.  이정표에서 방향대로 2.5km정도를 더 달려갔더니 마을 중간쯤의 전주에 "신룡동 오층석탑" 표시가 눈에 띤다.  어?~~ 그런데 이곳은 4~5년전에 이 마을 단감재배농가의 선진시 견학차 와본 기억이 있는 곳이더라구요~!!  세상에나...^^ 이럴수도 있군요.  그때는 블로거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지 않을 때라 오층석탑에 대해서 관심없이 넘겼었던 것 같아요.


[신룡동 오층석탑과 예상 밖의 횡재 석불입상]



광주 동구 지산동 보물 제 110호 "광주동오층석탑" [光州東五層石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의 양식을 포함하고 있는 오층석탑! 그 오랜 세워을 잘도 견디었구나!   이 정도의 미끈한 탑이 세워진 곳이라면 분명 그 명성을 날리던 대규모의 사찰이 있을 법도 한데...어찌 그 세월속에 홀로남아  천년을 넘어 온갖 희노애락을 보듬으며 굳건하구나! 한참을 서성이며 만져도 보고, 얼굴 볼살을 부벼도 본다.  간절한 소망을 두손 모아 빌며 지칠때까지 오층석탑 주위를 돌던 중생들의 소망을 몇이나 들어 주었을까? 궁금도 하다.  내로라 하는 당대의 석공들의 혼신을 다한 솜씨가 더욱 돋보이는 오층석탑


 광주광역시내에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2기의 탑 가운데 동쪽에 위치한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이다. 탑이 서있는 부근은 백주사(栢州寺)터로 알려져 있기도 하나 추정할 만한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탑의 구성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형태로 신라석탑의 기본형을 잃지 않고 있다.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는 여러 개의 돌을 짜맞추어 구성하였으며,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다. 특히 지붕돌 밑면의 받침이 1층은 5단인데 비해 2층부터는 4단으로 간략화되어, 양식상 만들어진 시대가 통일신라 후기로 내려옴을 알 수 있다. 

1955년 해체, 수리할 때 4층 지붕돌 윗면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고 1961년에 다시 수리를 하여 일부 석재를 보완하였다. 광주 전남지방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5층석탑 가운데서도 우수한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이다.  [출처-문화재청]



광주시 신룡동오층석탑[광주시 유형문화재 제 12호]


이정표 아래 차를 멈춰 세우고 한적한 골목길을 따라 걷습니다.  벽돌 담장과 지붕을 나무유리창틀로 이어붙인 옛스러움이 반갑다.   담장 밖으로 고개를 살포시 내미는 자리공꽃과 푸른 빛깔의 단단한 자두가 바라만 보아도 입안 가득 침이 고이는군요.








분명 800여 미터라고 표시가 되어 있는데  200여미터를 걷고는 길을 헤맨다. 덕분에 담벼락 밑 낮은 곳에서 어여쁘게 피어나는 꽃들과 잠시 눈마춤을 할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다.  채송화...빨강, 노랑, 분홍의 고운색으로 방긋이 웃고 있는  귀여운 녀석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옆으로 이제 막 피어나는 두 뼘도 채 안되는 봉숭아가 꽃을 피웠다.  이렇게 해찰하는 시간...나쁘지 않다.  조금 늦게 본들 무슨 대수일까..기온이 이리도 뜨거우니 밭에 간들 일도 못할 것이니 마음을 여유롭게 다독인다.  마을 경로당의 창문으로 어르신들의 음성이 나즈막히 들렸다.  가까스로 길을 여쭙고 나서야 올바른 길을 알았다. 


 차를 가지고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한다신다. ㅎㅎ 그런데  신촌마을...이곳이 행주기씨의 집성촌 이라는 커다란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500여년전부터 지금의  신룡동 신촌마을에 터를 잡아 아직도 타성이 살지 않는 전국에 몇 안되는 집성촌이라 한다.  옆집, 앞집, 뒷집이 모두 친족간인 곳! 왠지 그런 곳에서 살아도 좋을 듯 싶다.  



차를 타고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되는 단감농장의 작업장 창고 외벽의 커다란 벽화... 벽화 속 꼭대기 백우산 자락에 "신룡동 오층석탑"이 보인다. 벽확속에 행주기씨의 문중재각이 중앙에 그려진 것으로 보아 이 분도 행주기씨 성을 가지셨나 보다. 



단감 농장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소를 키우는 축사로 보이는 건물이 여러채 보인다.   아니 이런곳에! 그 신룡동 오층석탑이 있다는 건가.... 축사 가까이 갈 쯤 한개의 전주벽에  "방역상 출입금지" 라는 빨간 경고문이 보인다.  허허~~ 하지만 어쩌랴  오층석탑 보러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발길을 돌린다는 것이 여간 마음 내키지 않았다.  전진~! 축사 가까이 차를 주차하고 카메라를 챙겼다.  

보인다~!!! 보여~ 저기 탑신의 끝자락이 시야에 포착이 된다.  어라? 그런데... 오층석탑 바로 옆에 불상으로 보이는 것이 있어요!




 얼굴이 무슨 사연인진 몰라도 마치 연마기로 갈아 뭉갠것처럼 하얗게 지워져 버렸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까닭이 참 궁금해진다.  가만히 서 있는 석불입상이 무슨 헤꼬지라도 했단 말인가? 아님 백일, 천일 기도를 지성으로 올렸는데 아무런 자비도 베풀지 않았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을 문다.  그래도 그렇지....보는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이 밀려 들게 한다.  


 법의의 주름 곡선까지도 세세하게 조각해 놓은 손길이 참 고맙다.  왼손은 촉지인 [왼손을 자신의 배꼽에 대고 주먹을 쥔 상태에서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는 모양], 오른손은 시무외인[부처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베푸는 인상으로 팔을 들고 다섯 손가락을 펴서 손바닥을 밖으로 향해 물건 주는 모습]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토록 자비로운 석불입상을 저리도 모질게 훼손을 했는지 아쉽다.





 신룡동 오층석탑[新龍洞 五層石塔] 주위가 개인 소유의 한우축사여서 그런지 탑 주위의 넓은 땅에 사료작물을 심고 벤 흔적이 역력하다.  행정관서의 시급한 문화재 보호대책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가축의 방역상 외부인을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해가 되나  누구나가 편안하게 자랑스런 문화재를 관람하고 자료를 담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함이 옳다. 문화재 지정에만 국한되지 않고 오래도록 보존이 되고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이 가능하게 보완대책이 시급하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오층석탑 옆에 석조여래입상의  존재는 백우산의 산새와 더불어 아주 오래전에 제법 큰 규모의 절터 였을 것으로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외딴 민가 옆에 우뚝 솟아있는 석탑으로, 현재는 절이 있었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으나, 그 옆에 석불입상이 1구 있어 상당한 규모의 절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탑은 2층 기단(基壇)위로 5층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부의 몸돌은 2층에서 갑자기 높이가 낮아져 5층까지 알맞게 줄어들었으며,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3층은 4단씩이다가, 4∼5층은 3단으로 줄었다. 


 꼭대기에는 돌의 재질이 다른 장식들이 놓여 있는데, 나중에 보충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형식에 치우친 모습이어서, 고려 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층 기단이 손상되고, 일부가 없어져 심하게 갈라진 위층 기단은 거의 무너질 정도였으나, 1981년 해체, 복원하였다. 탑 해체시 발견되었던 유물들은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조만간 시간을 내어서 국립광주박물관에 보존된  1981년 복원 당시 발굴된 금동사리함과 그 외 유물들을 만나 보고 싶어진다.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되는 신룡동 오층석탑.... 훼손된 석조여래입상의 모습과 더불어 찾아가기 힘든 곳에  일반 한우축산 농가의 중앙에 있어 안따까움이 밀려오는 광주 문화재 답사여행!  광주 동구 지산동의 보물 제 110호로 지정된 "광주동오층석탑" 과 매우 흡사하다.  기단의 모습과 1층 탑신부 이후 높이가 급격히 작아지는 형상이 너무도 닮아있다.  혹시 동시대의 같은 석공들...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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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의 가슴 아픈 역사가 왜곡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딸기농부가 다녀온  5.18국립묘지


 

한치의 거짓도 없이, 꾸밈도 없이, 역사적 사실 그대로 후손에게 알려 주어야 하는 것이 참 역사입니다.


딸기농부는 80년 5.18 민중항쟁의 가슴 아픈 역사와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국민의 한사람으로 스무살을 조금 넘은 시점에 전라도라는 땅을 밟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80년 5월 광주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10여년이 지난 1990년에 생전 처음으로 전라도라는 땅에 첫 발을 내딛었던 것이지요. 당시의 망월동 민주열사들의 묘역도 처음 가보았고,  머리카락이 쭈삣서며 소름돋는 공포가 온 몸을 엄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10여년이 더 지난 지금! 수많은 민주열사들이 조국의 정의로운 민주화를 위해 목숨도 아까워 하지 않는 투쟁의 결과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2002년 광주민주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시행과 국립5.18묘지로 승격, 2011년 5.18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이르는 등 80년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앞당긴 승리의 항쟁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2013년 5월 27일.... 1980년 5월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사납게 타오르던 5.18의 거대한 불꽃은  27일 새벽, 계엄군의 총칼을 앞세운 무자비한 작전에 피를 토하던...33년이 지난 그날에 하늘도 그 슬픔 역사를 알듯이 거세게 5.18의 숭고한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망월동 묘역을 적시고 있었다. 마침 누나와 동생으로 보이는 남매가 민주열사들의 사진에서 올바른 역사를 들여다 보고 있다. 역사는 감춘다고 감추어 지는 것이 아님을, 왜곡한다고 왜곡이 되어지는게 아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들이 흘린 값진 피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거룩한 밑거름이다. 


5월의 영령들을 달래는 비가 촉촉히 내리는 망월동... 

피어 보지도 못한 어린 열사의 작은 사진앞의 국화 한송이에 한참을 머문다. 


신록으로 물드는 5월에 이루지 못한 꿈을 간직한 숭고한 영령들의 묘소에는 

순백의 영혼을 상징하듯 국화들이 고스란히 내리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막아주고 있는 듯 했다.


돌아오지 못할 자식을 잃은 슬픔이 몇 백년이 지난다 한들 잊혀질까...

부모보다 먼저 간 자식의 묘비 앞에  술 한잔과 담배 한개피로 아픔을 달래던 

이제는 백발과 이마에 주름 가득한 자식 잃은 어느 노모의 한숨이 들려 오는 듯 하다.

고이 잠드소서..


작은 유리관속의 대한민국...정의....라는 글귀가 

한참이나 내 시선을 붙잡는다.  이 땅에 진정 정의는 살아 있는 것일까...?


비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의 몸짓이 절규하는 외침을 닮은 듯 귓전을 때린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국민들이 지난 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함께 불렀고, 또 그렇게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민주화를 염원하는 여러나라의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불려지고 있습니다.  프랑사는 대혁명시기에 불려졌던 행진곡인 "라 마르세이유" 를 국가로 지정하여 그 의미를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자랑스럽고 대표적인 5월의 노래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고 5.18민주화운동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되어 영원히 후손들에게 불려져야 합니다.


[온라인 서명 바로가기  아래 그림을 눌러주세요!]


망월동 묘역을 지나 5.18민주화운동 국립묘지를 참배합니다.

5.18민중항쟁 33주년을 기념하는 추모의 글 리본들이 내리는 빗물을 다 맞아가며 손에 손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창하듯이 비바람에 나부낍니다. 


민주의 문을 들어서자  저 멀리 5.18민중항쟁 기념탑이 우뚝허니 5월의 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을 대변하듯 솟아 있습니다.  탑신 중간에 두손을 모으고 있는 형상은 추모와 염원을 상징하며  탑 중간에 있는 둥근 조형물은 "난형환조"로 구천을 떠도는 영령들의 혼백이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는 생명의 씨앗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1980년 5월... 처절했던 비극의 광주는 다시는 되풀이 되서는 안됩니다.

죽은자의 희생이 값진 유산이 되기위해서는  산자들의 올바른 역사알기의 책임이 뒤따라야 합니다.



■5.18 민주화 운동의 의의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칼과 군화의 짓밟힘에도 그 뜨거운 불씨마저 짓밟혀 버린것은 아니었다. 그 불씨는 혹독한 시절에도 꺼지지 않고 더욱 빛을 발하면서  그날 이후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결코 꺼지지 않는 불길로 남아있다. 그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스러움 이었으며 오욕의 역사가 아니라 긍지의 역사였다. 광주시민들의 자랑과 긍지는  단순한 향토애나 반항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항쟁기간을 가장 뜨겁게 살았던 시민들의 절실한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권력의 탄압이나 각종 언론의 왜곡선전에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있다.  


■광주의 진실 

광주의 시민 모두가 자발적으로 공수부대의 야만적인 폭력에 굴하지 않고 하나로 싸웠다는 것이다.  당국에 의해 불순분자와 폭도들의 난동으로 왜곡매도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는 길이고,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던 것이다.

항쟁의 전 기간동안  광주시는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위기를 가장 인간다운 삶의 협동정신으로 대처했다는 것, 계엄군에 완전포위되면서도 먹을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음식을 나누고, 피가 부족한 부상자에게는 피를 나누어 주며, 일손이 필요할 때는 시민들 누구나가 달려들어 그 일을 했던 것이다. 

광주시는 공식적인 치안체계가 완전붕괴되었지만 거의 완벽한 치안체계를 유지했고, 총기류가 시민들의 수중에 있었어도  단 한건의 불상사도 발생치 않았고, 금융기관, 금,은방등의 범죄자들이 노릴 만한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점에서 5.18민주화 운동이 오로지 민주주의의 공동체 구현을 위한 시민봉기 였다는 점을 증명한다. 


■5.18민주화 운동의 교훈과 의미

한국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한국전쟁이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극소수의 사회진영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혈맹관계로 인식하고 있었다.그러나 광주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신군부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급속하게 깨지기 시작, 80년 이후 반미운동의 고양을 가져오게 된다. 

일반 민주주의의 진전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1980년 봄의 민주화 운동을 부정하고 들어선 제 5공화국은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체제로 일관하자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이 해마다 5월이 되면 국민들의 단합된 움직임이 일어나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던 독재체제가 어느정도  불식되고 민주주의의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직막으로 각종 지배구조에 억눌려 있던 일반 시민들에게 주인의식의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5.18민주화 운동은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뒤바꾼 전대미문의 시민무장봉기였다. 광주시민의 선혈을 발판으로 정권을 잡은  5, 6 공화국의 광주양민학살만행과 천문학적인 부정부패가 만천하에 드러나, 결국은 역사와 정의와 법에 의한 단죄행로를 걷고 5 공화국 7년동안 민주화운동의 실체를 밝혀줄 각종 자료와 증거들이 소리없이 사라져 갔지만 6 공화국의 광주특위 청문호를 통해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이 상당부분 밝혀졌다.  점점 거세지는  "5.18민주화 운동 책임자 처벌" 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의해 "역사에 의한 단죄" 가 아닌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과 생존권, 저항권을 말살한 헌정 초유의 내란집단으로 규정되어  전 세계의 관심속에  "법과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세기의 재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과거의 역사적 잔재와 의식의 소유자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각분야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며 저항하고 있기 때문에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5.18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왜곡하고 은폐하려 해도 국민과 정의의 힘에 의해 낱낱이 밝혀질 것이다. 이것은 역사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고 기약하기 위해선  한 시대의 아픔과 절규에서 스스로 벗어나 우리 사회의 가능성과 역동성을 하나로 묶는 공동체의 실현이 요구된다.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은 더욱 더 찬란한 역사속의 빛으로 승화될 것이다.  내용출처- 광주광역시 5.18기념문화센터 사료편찬위원회


[5.18민주화운동 역사왜곡. 훼손사례 신고센터 가기]


망월동 구묘역과  5.18국립묘지를 둘러보는 두어 시간 내내 온 몸에 소름이 끼치고,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돋는 느낌이었다.  민중항쟁에 뛰어드는 순간은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없었다면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때...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의 간절하고 값진 희생과  염원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진전된 민주주의 속에 우리가 있을 것이다.  7~8년 전에 참배했을 때에 역사의 문을 지나 지하 전시실에 들어갔을 때 차마 눈뜨고는 볼수 없었던 참혹한 희생자들의 사진자료들이 이제는 교체가 되고 어린이 역사체험 학습관으로 리모델링 되어 한결 마음이 가벼워 졌다. 고귀한 희생이 조금씩 빛으로 승화되고 있음을 느끼며 딸기농부 차분해지는 마음으로 돌아 왔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옮겼던 딸기농부의 5.18민중항쟁 역사 바로 알기 홀로답사 돌아오는길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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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종환 2013.06.16 2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5.18민주화운동의 역사 왜곡은 열굴을 가리고 하늘을 보는것과 다름 없습니다.
    1980년 5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쳐지는데...
    마치 북한군 600명이 내려와 광주시민을 선동해서 일으킨 폭동이었다는 허무맹랑한 왜곡된 사실을
    사실인양 보도하는 일부종편 방송이나 일배라는 사이트의 왜곡사실을 젊은 사람들이 접했을때 어떤 생각을
    하게될지 걱정이 앞섭니다.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고 배워야 할 청소년 들에게 바른 역사 인식을 위해서 교과서에 기술해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올바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5.18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종환



휴일 아이들과 함께 한 광주 일곡갤러리 이 성태화가 개인전 "등대로부터의 자유 세번째 이야기"


5월 19일, 휴일 늦은 아침에 딸아이 셋을 데리고 광주 일곡도서관내의 일곡갤러리에서  "이 성태 개인전" 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이 성태 화가님 하고는 지난 4월말경에 장성군 동화면 사무소 벽화 그리기에서 알게된 인연이지요. 화가가 전업이 아닌  모 전자회사의 광주공장에서 근무하시면서 틈틈이 기회가 되면 늘 붓과 물감을 대동하시며 그림을 그리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끄적거리신다는 표현을 하시지만  경기미술대전 입상, 전국근로자대회 입상, 경기예술제 대상 등의 굵직한 대회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고 계시더군요.  등대로부터의 자유의 타이틀로 2009년, 2011년, 그리고 2013년 세번씩이나 개인전을 열었답니다. 그리고 2012년 광주 롯데 갤러리에서의 길 위의 풍경 초대전 이후   5월에 있을 네번째 개인전에 대하여 말씀 하셔서 꼭 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며칠후에 개인전 모듬집을 보내주셨지요.  소학교 시절 그림에도 관심이 많아 교내 사생대회에도 몇번 나가 상장도 받았던 딸기농부! 기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딸아이들과 함께 편안하게 이 성태 화가님의 마음의 고향같은 작품을 감상합니다.  이 성태 화가님의 그림의 소재는 바다와 등대가 주류를 이루더군요. 바다를 쉽게 볼 수 있는 부산출신의 화가이시거든요.  어릴적 어머님의 품같은 넓은 바다를 보며 고운 감성을 키워 오셔서 그런지 작품속에 어머니의 품같은 포근함이 녹아 있습니다.  아래 사진의 작품들중 왼쪽 상단 첫번째 작품이 이 성태 화가의 네번째 개인전 "등대로부터의 자유" 입니다.  


등대와 바다를 바라보는 소녀..... 작품속의 모든 소녀, 아이들, 청년들은 모두 이 성태 화가 그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늘 바다를 접하며 꿈을 키워 왔던 화가!  등대와 소녀 뒤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꽃들이 무얼까요?  처음 그림을 보는 순간 저는 튜울립 인줄 알았는데...글쎄.... "파꽃" 이라고 하십니다. 푸른기둥 하늘 향해 키자랑하고 그 꼭대기에 작은 쌀알을 뭉테기로 모아 놓은 듯한 하얀 파꽃... 작가는 그것을 다양한 색을 부여해 예뻐지고 싶은 소녀의 마음을 표현했는지도 모릅니다.~




이 성태 개인전 "등대로부터의 자유" 는 5월 31일까지 

일곡도서관 내의 일곡갤러리에서 전시가 됩니다.



"바쁜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개인전을 연다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지만 

퇴근후 시간과 휴일의 시간들을 통해 

저만의 색깔들로 따뜻하게 표현하려고 애를 써 보았습니다.~" 이 성태 화가


아이들에게  작품 하나 하나 설명해 주시며 작품 이해도를 높여 주십니다.


저 멀리 바다가 있는 고향 집의 봄날... 마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작품속에 주인공처럼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온화한 봄날 유채꽃 향기가 

몸 구석구석 빈틈없이 감싸고 도는 듯 따사롭습니다.


왼쪽 작품이 "기다리던 봄에"

오른쪽 작품은  "등대로 가는 길" 입니다.

바다가 고향이 아니더라도  상상속에서만이라도 

또래 친구들의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고향의 풍경 입니다.


이 성태 화가의 시선이 작품속에 고정되어 

그 시절을 회고하듯 편안해 보입니다.



남해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쓰러져 가는 말들로

가끔 흔들거리는 내가 아플때 

남해 바다로 간다.


엄마의 품속같은 등대...

바라만 봐도 편안해지는 곳으로 

잠시 바람결에라도 날려 보내자


서두르지 말고

지나가는 시간처럼

한 걸음씩 내딛고 가 보자


아직 내꿈은 살아 있어

지금의 삶이 더 절실한지도 모른다.

-이 성태 화가 씀 -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 여름과 가을의 풍경들을 이채롭게 표현해 낸 작품 

" 나무들의 합창"  왼쪽 상단 입니다.

화가의 아래 쪽 " 가을 길의 산책"



오른쪽에서 두번째 줄 위에서 아래로 "수북마을의 봄"  "벚꽃 바람에 날리던 날"  "벚꽃 엔딩"


봄이 몸서리치게 아픈가 보다


바람에 꽃잎이 날릴때마다 

온 몸을 흔들어 놓으니

나도 너처럼 흔들거린다.


누가 그랬던가..


저...꽃잎들이 다 눈물이라고.

-이 성태 화가노트 중-


 작품 "마법의 성"  물고기가 하늘을 날아 다닌다?~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마범의 성!



남해 독일마을의 풍경! 

바닷가 모래사장을 걷는 연인들의 모습에 행복이 느껴진다..

이 성태 화가에게서는 바다와 소년, 등대와 바다, 꽃과 소녀가 작품속의 주류를 이루는 듯 하다. 

사실표현에 가까운 강렬한 자연 원색의 터치!  작품을 보면 멋진 화가를 꿈꾸는 소년이 보인다.


왼쪽 "겨울이야기"

오른쪽 "내가 꿈꾸는 세상"


작품을 보고 있으면 바다를 사랑한 소년이 투영된다.  

꽁꽁 언 겨울에도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물고기들,  바다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처럼 

그림의 표현 또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 



가운데 작품 " 유채꽃 길"

안타까움이 밀려드는 작품이다.  나주시 영산강의 영산대교 아래에 있던 "동섬" 

섬이라 하기엔 너무나 작은 곳이지만.. 유채꽃 가득한 4월의 동섬의 새벽녘 풍경은  마치 

창녕의 우포늪을 연상케 했다고 한다.  하지만...이제는 더 이상 볼수 없는 사진과 그림속의 풍경이 되버렸다.


4대강 유역의 개발로 인해 더 이상은 그림같은 자연을 볼수가 없다.

  봄 가을 안개 자욱한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었다고 하니..안타까움은 더 하다.



갤러리 입구의 오른쪽편으로 다양한 화가의 작품들이  바둑판처럼 전시가 되어 있다.

갤러리가 좁은 탓도 있지만  이 성태 화가가 독일, 중국, 파타야,  등 외국을 여행하면서 

곳곳의 순간들을 작품들로 남겨온 것들과 남해 바다에서 남긴 것이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다. 


딸 아이들이 이곳에서 한참을 속삭이며 작품 감상을 한다.  


행복한 세상과의 소통! 그림을 그리면서 사각의 작은 캔버스

위에 풍부한 감성으로 표현해 내는 이 성태 화가... 나도 이제 가슴 속 깊이 내재된

본능을 끄집어 내 볼까?~~~ㅎㅎ


"청개구리의 하루"...

마술에 걸린 자신을 구원해 줄 아름다운 공주를 기다리는 듯...ㅎㅎ

이 성태 화가는 작고 앙증맞은 "어리연"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한다. 

8월이면 영롱하게 하얀 별빛을 닮은 어리연 꽃이 핀다. 

 가운데가 노란 황금빛으로 순백색의 다섯개 꽃잎을!



그림을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은 이성태 화가님~

기분 좋은 인연에 행복을 한아름 안고 다녀온 딸기 농부 입니다.~


네번째 이성태 개인전


2013-5-16(목)~ 5.31(금) 

작가와의 만남  5/23~26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일곡도서관길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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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랑] 블로그 기자단/SNS 서포터즈 발대식 후기!

 

 

이웃님들, 안녕하세요. 광주랑 블로그 기자단 4기로 활동하게 된 미뇰리입니다:-)

저랑 친한 이웃님들은 아시겠지만 전 현재 '광주'에 거주하고 있어요!

오늘 광주광역시청에서 광주랑 블로그 기자단과 SNS 서포터즈 발대식을 했답니다.

 

 

 

 

 

3기 때까지만 해도 SNS 서포터즈와 블로그 기자단이 따로 발대식을 가졌는데,

이번에는 대회의실에서 다같이 진행했어요!

수업 한 과목은 그냥 못듣는 셈 치고 일찍 상무지구 도착해서 밥먹고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시청 둘러보고 놀았답니다.

 

 

 

 

 

 

시청 1층에는 여러 대의 엘레베이터가 있었는데요,

친절하게 플랭이 세워져 있더라구요:-)

 

 

 

3층에서 내리니 이렇게 많은 블로그 기자단분들과 SNS 서포터즈 분들이 줄을 서 계셨어요.

그 수가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많을 줄이야!

앞에서는 자원봉사자분들께서 이름과 밴드 가입 여부를 체크하시고 티셔츠와 위촉장 가이드북을 주셨답니다.

 

 

 

 

 

주신 선물들 고이 받고 한 쪽에 있는 메모보드에 글 남기기!

조금 아쉬웠던 점은 포토존에서 사진 찍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친구랑 같이 활동 했으면 더욱 재미있게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광주광역시청 3층 대회의실의 모습이에요.

카메라로 전체적인 모습을 한 번에 담을 수가 없어서 맨 밑 사진 보시면 파노라마로 담아냈어요!

굉장히 넓고, 웅장함이 느껴졌답니다:-) 언제 시청 대회의실에 들어와보겠어요. 기분 좋더라구요-ㅎ

 

 

 

 

대회의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앉아서 사진 찍기 시작!

받았던 가이드북, 위촉장, 네임표 등 다시 천천히 보기 시작했어요.


 

 

 

순서가 시작되고, 광주가 이뤄낸 성과들! 강운태 시장님의 땀과 노력이 담긴 모습들을 영상으로 보게 됬어요.

광주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사실 살면서도 모르는 부분이 참 많거든요.

그런데 우리 빛고을 광주, 생각보다 더 멋있던데요?

 

 

 

영상이 끝나고 재미있는 레크레이션 시간:-D

옆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 인사도 하고, 어깨도 주물러주고!

다행히 제 옆에는 저와 동갑내기 친구가 있어서 굉장히 편하게 즐기고 올 수 있었답니다.

위의 모습은 기아 타이거즈 선수들의 친필 사인볼을 받기 위한 광주 시민들의 열정적인 모습이에요, 대단해요~

 

 

 

 

 

그 다음 순서로는 광주의 대표 댄스팀 '빅사이즈'의 무대를 보게 됬어요.

아주 어릴 적부터 밀리오레, 청소년수련관 등 곳곳에서 이 분들의 무대를 보고 자랐는데..

여기서 또 보게 될 즐이야, 여전히 멋있습니다.

 

 

 

 

 

광주랑 블로그 기자단과 서포터즈 5분씩 해서 총 10분이 무대 앞을 대표해서 나가셨어요.

광주의 시정성과 베스트 10을 맞추는 시간이였는데요.

 

여기서 광주광역시의 시정성과가 궁금하지 않으시나요?

 

(성과 부문)

1위. 무등산 정상 개방

2위. 세계한상대회 유치

3위. 97개 작은도서관 육성

4위. 광주 새 야구경기장 건립

5위. 어린이집 건강주치의 시행

 

(창의혁신 부문)

1위. 골목상권 살리기 추진

2위. 28년만의 택시 6부제 추진

3위. 정신보건트라우마센터 설치

4위. 광주 인권헌장제정

 

대표로 나가신 분들이 모두 잘맞춰주시더라구요:-) 전 짧은 시간에는 외우지 못했어요-흑.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우리 광주.

앞으로 블로그 기자단으로 활동하면서 더욱 감사하게 될 것 같고, 자랑스럽게 활동하게 될 것 같네요.

광주의 알찬 소식들 발빠르게 뇰리가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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